2억 4,800만 달러짜리 영화를 보고 외계 돌멩이 때문에 엉엉 울었습니다. 저도 몰랐어요, 제가 이런 사람인지. 남자친구는 제 비염이 심해진 줄 알았다고 했는데, 사실 그냥 펑펑 운 겁니다. 슬픈 장면이 어디 있냐고요? 저도 딱 짚을 수 없어요. 그냥 영화가 너무 행복해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우주에서 혼자인 사람 이야기
영화는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동료 승무원 둘은 이미 죽어 있었고,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 그때 그레이스가 하는 말이 "나 똑똑한 사람이었어"입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 장면에서 그레이스가 주변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이 과학자일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도출하는데, 영화는 그 과정을 압축해 버립니다. 이 선택 하나가 영화 전체의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셈이었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태양이 아스트로파지라는 정체불명의 우주 미생물에 감염되어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30년 뒤에는 지구가 차갑게 식어 식량 대란과 멸종 위기에 처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인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가동합니다. 헤일 메리(Hail Mary)란 원래 가톨릭 기도문에서 온 표현으로, 마지막 수단, 절박한 최후의 시도를 뜻합니다. 미식축구에서도 경기 종료 직전 절박하게 던지는 롱패스를 헤일 메리라고 부르죠. 그 이름을 프로젝트에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답이 없는 상황임을 말해줍니다.
그레이스가 탑승한 우주선은 돌아올 연료조차 없는 편도 미션이었습니다. 영화가 특이한 건 이런 극한의 설정 속에서도 공포나 위협보다 경의감과 호기심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입니다. 우주를 나가면 죽을 것 같은 느낌 대신, 우주가 그냥 아름다워 보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웬만한 우주 영화가 주는 그 불안함이 이 영화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조명과 색감, 예리한 그림자가 세트 곳곳을 비추는 방식이 차갑고 폐쇄적인 기존 SF의 통념과 완전히 달랐어요.
이 영화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대부분 혼자 연기합니다. 실제 촬영 세트도 제한적이었고, 믿고 숨 쉬며 교감할 상대 배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과잉 연기도 없고 절제를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닌, 그 사람만의 나른한 톤이 그레이스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약간 비겁하고 어설프고, 찌질한 면도 있지만 과학적 통찰만큼은 탁월한 이 캐릭터. 보통 주인공이라면 강하고 멋있는 영웅 서사를 기대하는데, 그레이스는 정반대입니다. 그 찌질함이 오히려 저는 너무 좋았어요.
돌멩이와 우정, 그리고 눈물이 난 이유
그레이스가 마주치는 외계 생명체 로키는 거미 형태의 바위 같은 존재입니다. 얼굴도 없고 눈도 없어요. 그런데 이 존재에게 감정이 이입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로키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음파를 이용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반향 정위(Echolocation)라는 개념인데, 반향 정위란 소리를 발사하고 그 반향음을 분석해 주변 공간이나 사물을 파악하는 감각 체계를 말합니다. 박쥐나 돌고래가 쓰는 방식이죠. 로키가 그레이스를 인식하는 장면이 로키의 시점으로 보일 때,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존재가 눈앞에 실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장면들이 너무 좋아서 지금도 생각나요.
로키가 처음 등장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립니다. 이게 의도된 구성입니다. 내러티브 구조상 관객을 먼저 고립 상태에 가두고 기본 감정을 충분히 쌓아 둬야, 외계 친구가 등장하는 순간이 폭발적으로 느껴집니다. 스필버그의 E.T.도 비슷했죠. 초반 30분 동안 외계인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래서 등장하는 순간의 감동이 배가됐습니다. 헤일메리도 그 타이밍을 똑같이 씁니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처음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과정은 언어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음파를 매개로 한 피저(Pidgin) 언어, 즉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두 존재가 임시로 만들어내는 혼성 의사소통 방식이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이렇게 쌓아 올린 소통이 결국 진짜 우정이 됩니다.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그레이스가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입니다. 같은 인간들은 전 세계 인구를 볼모로 죽으러 가라는 결정을 3시간 만에 내리는데, 로키는 달랐습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잘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그 말이 영화 속 그레이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저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위로가 됐습니다.
이 영화가 다른 SF 영화와 다른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협과 공포 대신 경이로움과 호기심이 중심에 있습니다
- 개인 생존이 아닌 종의 멸종을 막는 절박함을 다루면서도 무겁지 않습니다
- 주인공이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찌질하고 인간적인 과학자입니다
- 외계 생명체와의 첫 접촉(First Contact)이 위협이 아닌 우정으로 전개됩니다
SF 장르에서 퍼스트 콘택트(First Contact)란 인류가 처음으로 외계 지적 생명체와 마주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퍼스트 콘택트 서사가 충돌이나 침략을 상정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협력과 공감을 택합니다. 그래서 낯설고,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제가 보면서 이과 친구들은 고증에 맞지 않는 장면에서 불편해했지만, 문과인 저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었습니다. 러닝타임이 2시간 40분이 넘는데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끝나는 게 싫었어요. 영화를 아껴 먹고 싶다는 감각, 헤일메리를 보면서 처음 느꼈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아마존이 MGM을 인수한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간 프로젝트입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코로나 시기에 책을 읽고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먼저 나섰고, 수년을 기다린 끝에 영화가 완성됐습니다. SF 영화의 흥행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있었지만, 현재 시점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는 박스오피스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영화의 아이맥스(IMAX) 포맷 활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이맥스(IMAX)란 일반 극장 화면보다 훨씬 큰 화면 비율과 고해상도를 제공하는 상영 포맷으로, 압도적인 스케일과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전체 런타임의 약 3분의 2가 아이맥스 화면비로 촬영됐는데, 우주 유영 장면과 행성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이 차이가 확실히 느껴집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이맥스로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각색 분야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주관하는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으로, 각색상은 원작을 영화로 옮긴 각본의 완성도를 평가합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솔직히 이 영화, 제 올해 최고의 영화입니다. 원작 소설이 너무 궁금해서 책도 주문했습니다. 모든 장면이 아쉬웠고, 두 번 세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가능한 한 큰 화면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외계 돌멩이 때문에 우는 경험, 저만 하기엔 너무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