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위키드를 그냥 "아리아나 그란데 나오는 뮤지컬 영화"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릴스에서 위키드 군무 연습 영상이 뜨는 순간, 칼각 맞는 발소리 하나에 마음이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뮤지컬 원작이 있고, 그 전에 소설도 있다는 걸 뒤늦게 파악한 채로 극장에 들어갔는데, 2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파트 2를 앞두고, 파트 1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극장에 가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중학생 때 못 다 읽은 소설이 영화가 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중학생 때 위키드 원작 소설을 읽다가 포기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배경으로 마녀들의 뒷이야기를 다룬 성인용 소설로, 분량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완독을 못 한 채 덮어뒀는데, 그게 영화 파트 1을 보러 가는 날까지 살짝 마음에 걸렸습니다.
중요한 점은, 영화는 소설 원작이 아니라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6천만 명 이상이 관람한 뮤지컬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제작·공연되는 대형 상업 뮤지컬을 의미하며, 세계 공연 시장의 기준점이 되는 최고 권위의 무대입니다. 소설과 뮤지컬 사이의 간극이 꽤 크기 때문에, 소설을 먼저 읽으신 분이라면 냉소적이고 어두운 원작과 밝은 톤의 영화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뮤지컬 위키드는 그 유명한 4대 뮤지컬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9년 연속 뮤지컬 1위 자리를 지킨 작품입니다. 영화는 전 세계 7천만 명이 관람하며 1조 1천억 원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IP(지식재산권)가 영화화될 때 뮤지컬 원작을 기준으로 삼은 건, 팬덤 크기와 서사 구조 모두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IP란 특정 캐릭터나 세계관, 스토리 등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창작 자산을 뜻하며, 영화·드라마·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이 가능한 원천 소재입니다.
파트 1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서사 구조
파트 2를 보기 전에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위키드가 일종의 프리퀄(prequel) 구조로 설계됐다는 점입니다. 프리퀄이란 기존 작품의 이전 시간대를 다루는 전편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 결말, 즉 서쪽 마녀가 죽고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는 엔딩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마녀들의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파트 1의 핵심을 놓쳤다면 아래 흐름을 머릿속에 정리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엘파바는 녹색 피부로 태어나 가족에게도 외면당하며 분노를 키웠고, 이 감정이 마법적 재능으로 발현됩니다.
- 글린다는 귀족 출신으로 인기와 권력에 집착하지만, 엘파바와의 우정을 통해 조금씩 변해갑니다.
- 오즈의 마법사는 실제로 마법 능력이 없는 허상이었으며, 동물 탄압의 배후로 드러납니다.
- 마법서 그리머리(Grimmerie)는 엘파바만이 해독할 수 있는 고대 마법서로, 파트 2의 핵심 갈등을 만드는 소재입니다.
- 엘파바가 오즈의 성에서 탈출하며 글린다와 부른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로 파트 1이 마무리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중간중간 답답함이 쌓일 만한 타이밍에 항상 OST가 터졌다는 점입니다. 속이 꽉 막혀 있다가도 노래 한 곡이 나오면 거짓말처럼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디파잉 그래비티는 특히 영화를 본 지 한참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뮤지컬 영화에서 OST가 서사를 대신 설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OST와 안무가 만들어내는 몰입감
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간 직접적인 계기가 릴스에서 본 군무 연습 영상이었습니다. 칼처럼 맞아떨어지는 동작과 발소리만으로 극장을 가게 만들 줄은 몰랐는데, 막상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니 영상으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뮤지컬 영화의 안무 연출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입니다. 코레오그래피란 무대나 영상에서 퍼포머들의 움직임을 설계하고 구성하는 안무 연출 작업 전반을 의미하며, 단순한 춤이 아니라 서사와 감정을 신체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입니다. 위키드의 군무 장면들이 단순히 화려함을 넘어서 캐릭터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 느꼈습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연기도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팝스타 출신이라 연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갔었는데, 글린다 특유의 겉으론 밝고 가볍지만 속으론 결핍이 있는 인물을 꽤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퍼플러(Popular) 장면에서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아니라 진짜 글린다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뮤지컬 영화의 흥행 공식 중 하나는 음악 퀄리티와 무대 스펙터클의 균형인데, 위키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킵니다. 뮤지컬 전문 매체인 Playbill은 위키드의 영화화가 기존 브로드웨이 팬덤과 새로운 관객층 모두를 겨냥한 성공적인 크로스오버 사례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제 경험상 뮤지컬을 유튜브로만 접하던 것과 극장 사운드로 듣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에, 아직 영화관에서 못 보신 분이라면 가능하면 아이맥스나 돌비 상영관을 추천합니다.
파트 2를 앞두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파트 2는 도로시의 등장으로 시작해 서쪽 마녀가 죽는 결말까지, 파트 1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개될 예정입니다. 결말은 이미 오즈의 마법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지만, 감독 존 추가 어떤 연출로 그 장면을 재해석할지가 진짜 관건입니다.
저는 뮤지컬 버전을 유튜브에서 여러 번 챙겨봤기 때문에 결말 자체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파트 1을 보면서 "이 감독의 시선으로 엔딩을 어떻게 풀어낼까"가 너무 궁금해서 파트 2가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알고 보는 것과 어떻게 보여주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니까요.
파트 2에서 주목할 서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보크와 네사로즈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 글린다가 착한 마녀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 엘파바의 죽음이 실제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연출될지
뮤지컬 공연의 라이브 음향 데이터를 기준으로 위키드는 원년 주연 이디나 맨젤과 크리스틴 체노웨스의 퍼포먼스가 오늘날까지 기준점으로 회자됩니다(출처: 브로드웨이 리그). 영화 파트 1에는 실제로 이 두 배우가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뮤지컬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장면에서 절로 울컥하게 됩니다. 이런 레이어드(layered)된 연출, 즉 팬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오마주와 참조 요소들을 곳곳에 심어두는 방식이 위키드 영화를 단순한 뮤지컬 실사화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파트 2가 기대되는 분이라면 파트 1을 다시 한번 보거나, 위키드 뮤지컬 원곡 OST를 먼저 들어두시는 것도 좋습니다. 결말을 알아도 소용없고, 알고 가야 더 잘 보이는 영화입니다. 가능하다면 돌비 시네마나 아이맥스 상영관을 선택하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는 사운드로 경험하는 비중이 큰 작품이기 때문에, 화면 크기보다 음향 환경이 훨씬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