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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무싸 드라마 후기 (진입장벽, 찐따미, 8인회)

by soot0ry 2026. 5. 6.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1화를 세 번에 나눠서 봤습니다. 하루에 다 못 보고 껐다가, 또 켰다가, 결국 3일 만에 겨우 1화를 끝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4화까지 다 봤고, 더 보고 싶어서 방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줄여서 모자무싸.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라는 말 하나로 기대치를 잔뜩 올렸는데, 과연 그 기대가 맞았는지 직접 본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1화의 진입장벽, 넘어야 보이는 것들

혹시 1화 보다가 주인공 황동만 때문에 끄고 싶으셨던 적 있으셨나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으면 합니다.

구교환이 연기하는 황동만은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영화 감독 지망생입니다. 1화에서 이 인물은 남의 영화 뒤풀이 자리에서 신나게 작품을 깎아내리고, 주연 배우 뒷담화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정작 그 배우가 직접 등장하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이른바 발암 캐릭터입니다. 발암 캐릭터란 드라마 용어로, 시청자에게 답답함이나 불쾌감을 유발하도록 설계된 인물 유형을 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발암 행동이 1화 내내 지속된다는 점입니다. 완화되거나 반전이 오는 게 아니라, 그냥 계속됩니다.

제가 1화를 3일에 걸쳐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청 이탈률, 즉 특정 시점에서 시청자가 채널을 끄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 관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1화는 상당히 리스크가 큰 구성입니다. 실제로 국내 OTT 플랫폼의 시청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드라마의 시청 이탈은 1화 중반부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해영 작가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 그럼에도 이 구성을 선택했다는 건 의도가 있다는 뜻이겠죠.

2화부터는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형의 선택을 말리는 장면이나 은하가 건네준 500원을 찾기 위해 하수구를 뒤지는 장면에서는 웃으면서도 어딘가 먹먹해졌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황동만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찌질이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이 내면적으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궤적을 그리는 서사 기법이 이 드라마에서는 매우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1화의 그 불편함을 견뎌야 2화부터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만한 장치 중 하나가 바로 감정워치입니다. 등장인물들이 감정을 느끼는 순간 손목의 시계가 진동하거나 반응하는 이 도구는,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오브제(Objet) 역할을 합니다. 오브제란 원래 미술에서 일상적 사물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는 기법을 뜻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소품으로 활용됩니다. 동만과 은하가 똑같은 감정워치를 차고 있다는 설정은 두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받아 왔음을 조용히 암시합니다.

8인회라는 거울, 그리고 방관자의 자리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불편하게 본 건 황동만의 찐따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8인회였습니다.

8인회는 동만을 제외하고 모두 성공한 영화업계 모임입니다. 이 집단 안에서 동만은 먹고는 사냐는 말을 들어야 하고, 그만하라고 말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고, 결국엔 집단 절교라는 방식으로 손절당합니다. 이 장면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집단 따돌림의 구조가 겹쳐 보였습니다. 집단 따돌림(왕따)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게 사회심리학의 주요 시각입니다. 방관자(bystander)의 존재가 오히려 구조를 유지시키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인물은 준환이었습니다. 그는 동만의 모든 말을 들어주고 리액션해주지만, 다른 8인회 멤버들이 막말을 쏟아낼 때 한 번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중립을 지킵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그가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중립이 동만에게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나쁜 사람이라기보단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그게 왜 이렇게 싫은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준환 장면마다 불편했습니다.

반면 은하는 다릅니다. 최필름의 에이스 PD이지만 대표에게 미운털이 박혀 찬밥 신세인 그는, 사무실에서 동만을 씹는 상사들 앞에서 유일하게 다른 말을 꺼냅니다. 고윤정의 연기가 이 지점에서 빛납니다.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지 않는데, 그래서 더 잘 전달됩니다.

1화부터 4화까지 보면서 제가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드는 요소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황동만이라는 인물의 낭만 안에 숨겨진 서글픈 공허함
  • 동만과 은하가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들의 섬세한 온도
  • 8인회 각 인물이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를 가진 입체적 캐릭터라는 점
  • 박해영 작가 특유의 대사 밀도, 즉 한 줄 안에 여러 겹의 의미를 담는 방식

제가 직접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던 건, 보통 로맨스 드라마가 주는 설렘보다 이 드라마는 안아주고 싶은 감각을 줍니다. 동만도, 은하도, 보고 있으면 그냥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그게 이 드라마가 다른 이유인 것 같습니다.

모자무싸는 쉽게 소비되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1화를 버텨야 하고, 불편함을 견뎌야 하고, 그 다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내면의 구원을 그려온 박해영 작가의 서사 방식이 이번에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1화에서 멈춰 있는 분이라면, 한 화만 더 보시길 권합니다. 2화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ZRNLeRb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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